1876년(고종 13) 9월 26일에 복제(服弟)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이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안의 누군가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서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나지 못한지 오래되어 그리워하였는데 뜻밖에 상대방의 동생이 편지를 가지고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깨달아지고 눈이 밝아지는 것 같다. 이즈음 형제분들이 건강하다니 크게 위로된다. 복인(服人)인 자신은 올여름엔 단문(袒免; 9촌의 상)의 친족상을 당하여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산 아래로 지는 해처럼 되었다. 산송(山訟)은 사리가 곧은데도 패소를 당해 분하다며 임실 관아에 정소하였는데 사람이 미천하고 말이 가벼워 가망이 없다. 상대방 동생의 일은 지시하신대로 기록하였으니 열어본 뒤에 전하라고 하였다.
기양연은 기정진(奇正鎭)의 재종질이다. 1876년 1월 25일에 기정진의 아들 기만연(奇晩衍)이 사망하였으므로, 이를 근거로 원문의 '丙菊念六'을 병자년(1876) 9월 26일로 추정하였다. 기양연의 자는 자민(子敏), 호는 백석(柏石)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기윤진(奇允鎭)이다. 기정진의 재종질로, 일찍이 종숙부인 기정진에게 수학하였으며, 1867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척양사론(斥洋邪論)을 지었으며, 문과에 급제한 뒤에 곧바로 사헌부 지평과 장령에 제수되었다. 옥구현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