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헌종 6) 3월에 남원 견소곡방(見所谷坊)에 사는 유생 황지순(黃至淳)이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사동방(巳洞坊) 향약동(鄕約洞)에 있는 황지순의 친산(親山) 아래쪽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 어느 날 누군가가 투장(偸葬)을 하였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임자를 찾을 수 없으니 성주께서 전례를 잘 살피셔서 관(官)에서 투총을 파내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남원부사는 황지순의 소지에 대하여 추심(推尋)을 하고난 뒤에 다시 소를 올리라는 처결을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경자년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관련문서를 살펴보면 당시 투총자는 매안방(梅岸坊)에 사는 유성태(柳成泰)라는 인물로, 황지순 뿐만 아니라 황남(黃楠)이 올린 소지에도 그가 등장한다. 다만 황지순의 소지에는 산송의 대상이 된 산소가 이 문서에 보는 것처럼 황지순의 친산으로, 그리고 황남의 소지에는 황남의 조부산(祖父山)으로 나온다. 따라서 황지순은 황남의 부친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황남은 남원(南原)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황지수(黃智洙), 황재수(黃再洙) 등과 함께 1825년(순조 25년) 9월에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상서('1825년 황지수(黃智洙) 등 상서(上書)')를 올리고 있어서 이 문서의 경자년이 1840년이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