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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김관억(金寬億) 준호구(准戶口)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내용분류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자 : 전주부관(全州府官) / 수취자 : 김관억(金寬億)
· 작성시기 道光二十年月日 (1840)
· 작성지역 전라북도 전주시
· 형태사항 크기 : 45.5 X 56.5 / 서명 : 府官[着押] / 인장 : 1개(적색, 정방형), 周挾 字改印
· 소장처 현소장처 : 전주역사박물관 / 원소장처 : 고산 신평 경주김씨가
· 참고문헌
  •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 · 연결자료
  • 1819년 김인집(金仁集) 준호구(准戶口)
  • 1840년 김관억(金寬億) 준호구(准戶口)
  • 1861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1876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1879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1882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 정의

    1840년(헌종 6)김관억(金寬億)전주부(全州府)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해제
    1840년(헌종 6)전주부(全州府) 봉상면(鳳翔面) 사거리(四巨里) 제6통 제3호에 사는 당시 28세인 김관억(金寬億)전주부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이때 그는 처 만경두씨(萬頃杜氏, 23세)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당시 그의 장인 두양술(杜良述)은 중시(重試)에 급제(及第)하였다고 나온다. 중시는 조선시대 당하관(堂下官) 이하의 문무관에게 10년마다 한 번씩 보이는 과거이다. 한편 관련문서에 의하면 김관억전주부에서 고산현(高山縣)으로 이거하였으며 이때 이름도 세풍(世豊)으로 개명한 듯하다. 또한 한참 뒤의 일이지만 처 만경두씨가 죽었거나 그녀와 이혼한 뒤에 다시 동래정씨(東萊鄭氏)를 만나 재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주가 살았던 전주부 봉상면 사거리는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장기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원문텍스트
    [미상]
    道光二十年 月 日 全州府
    庚子成籍戶口帳內鳳翔面四巨里第六統第三戶金寬億年二十八癸酉慶州
    父學生 貞集
    祖出身 鳳熙
    曾祖學生 厚柱
    外祖學生羅致道羅州杜氏齡二十三戊寅萬頃
    父重試及第 良述
    祖學生 遇信
    曾祖學生 貴載
    外祖學生崔大貴全州
    府官[着押]
    [周挾字改印][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