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4일에 담양군대덕면삼림조합(潭陽郡大德面森林組合)에서 이혁(李爀)에게 발급한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대덕면삼림조합장 대리인 명의로 발행했다. 이혁이 납부한 금액은 1923년도 삼림조합비 4원(員) 35전(錢)이다
삼림조합은 1910년대부터 식림장려와 남벌방지라는 명분 아래에 삼림 이용 간섭 및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림조합, 식림조합, 식림계 등 다양한 명칭으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임야조사사업이 마무리되는 1920년대부터 각 군마다 다양한 조합을 통합, 정비하였고 주민들에게 조합비가 청구되었다. 삼림조합은 임의단체이지만 군 단위로 조직되어 주로 군수가 조합장이 되고, 군민들을 강제로 가입시키는 등 관제조직의 성격이 강했다. 조합원은 각 군 삼림조합에서 자체적으로 책정하는 조합비를 부담했으며, 산불 방지 활동, 송충이 구제, 벌채 제한 등 각종 의무가 가해졌다. 또한 채신세(採薪稅)나 임야벌채신청 수수료 등 다양한 추가 부담금도 내야 했다. 그래서 삼림조합에 대해 조선인들의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민족자결운동의 근원이 된다 하여 1930년대 이후에 해산되었다.
영수증을 수령한 이혁(1898∼1977)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아명은 병로(丙老), 자는 진명(進明)이다. 초대 전남대학교 법대 학장을 역임했다. 이혁의 아버지는 을사늑약 이후 5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을 암살하고자 했고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광수(李光秀)이다. 할아버지는 을미사변 이후 창의(倡義)하여 활동한 이승학(李承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