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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06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 내용분류 경제-회계/금융-영수증
· 작성주체 발급자 : 창평면삼림조합장(昌平面森林組合長) / 수취자 : 이승학(李承鶴)
· 작성시기 大正13年8月25日 (1924)
· 작성지역 전남남도 담양군
· 형태사항 크기 : 17.2 X 10.9 / 인장 : □…□(타원형)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정의

1924년에 창평면삼림조합에서 이승학에게 발급한 삼림조합비 영수증.

해제
1924년 8월 25일에 창평면삼림조합(昌平面森林組合)에서 담양군(潭陽郡) 창평면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에게 발급한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창평면삼림조합장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4년도 삼림조합비 15전(錢)이다.
삼림조합은 1910년대부터 식림장려와 남벌방지라는 명분 아래에 삼림 이용 간섭 및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림조합, 식림조합, 식림계 등 다양한 명칭으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임야조사사업이 마무리되는 1920년대부터 각 군마다 다양한 조합을 통합, 정비하였고 주민들에게 조합비가 청구되었다. 삼림조합은 임의단체이지만 군 단위로 조직되어 주로 군수가 조합장이 되고, 군민들을 강제로 가입시키는 등 관제조직의 성격이 강했다. 조합원은 각 군 삼림조합에서 자체적으로 책정하는 조합비를 부담했으며, 산불 방지 활동, 송충이 구제, 벌채 제한 등 각종 의무가 가해졌다. 또한 채신세(採薪稅)나 임야벌채신청 수수료 등 다양한 추가 부담금도 내야 했다. 그래서 삼림조합에 대해 조선인들의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민족자결운동의 근원이 된다 하여 1930년대 이후에 해산되었다.
영수증을 수령한 이승학(1857∼1928)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기대(李箕大)의 딸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89년에 백의(白衣)로 왕궁에 나아가 대책(對策)으로 천하의 병통에 관해 진술했고,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금성산(錦城山)에 제사를 지내면서 국조(國祚)의 융성을 빌고, 진(陣)을 광주(光州)로 옮겨 서울로 진격할 태세를 갖추었는데, 조정에서 선유사(宣諭使) 신기선(申箕善)을 보내 임금의 명으로 타이르자 분개를 참아내고 군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