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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03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 내용분류 경제-회계/금융-영수증
· 작성주체 발급자 : 김영구대(金永龜代) / 수취자 : 이승학(李承鶴)
· 작성시기 大正十三年二月一日 (1924)
· 작성지역 전남남도 담양군
· 형태사항 크기 : 17.6 X 10.5 / 인장 : 李彦秀 2顆(1.0×1.0)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정의

1924년이승학담양군 대덕면에 지세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

해제
1924년 2월 1일에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이 종중(宗中)의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담양군(潭陽郡) 대덕면(大德面) 회계원(會計員) 김영구(金永龜) 대리인 이언수(李彦秀)의 명의로 발행했다. 이승학이 납부한 금액은 1923년도 제2기 지세 11원(円) 96전(錢), 지세부가세(地稅附加稅) 3원 22전, 지세할(地稅割) 5원 50전, 지세부가 3원 58전으로 총 24원 26전이다.
영수증을 수령한 이승학(1857∼1928)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기대(李箕大)의 딸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89년에 백의(白衣)로 왕궁에 나아가 대책(對策)으로 천하의 병통에 관해 진술했고,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금성산(錦城山)에 제사를 지내면서 국조(國祚)의 융성을 빌고, 진(陣)을 광주(光州)로 옮겨 서울로 진격할 태세를 갖추었는데, 조정에서 선유사(宣諭使) 신기선(申箕善)을 보내 임금의 명으로 타이르자 분개를 참아내고 군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