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에 안봉환(安琒煥)이 사돈 이승학(李承鶴)에게 사위 이광수(李光秀)를 보내면서 전한 편지이다. 지난번 몇 날 밤을 함께 얘기 나누면서 고가(古家)의 풍모를 볼 수 있었다며 감탄의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사돈의 객지 생활은 좋으신지 묻고, 본인은 예전과 같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사위는 볼수록 기이하여 보내고 싶지 않은데 세속의 격식에 따라 돌려보내게 되어 서글프다고 전하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며 편지를 마쳤다.
안봉환은 죽산안씨(竹山安氏)로, 보성(寶城) 출신이다. 이광수의 장인으로, 안방준(安邦俊, 1573 ~ 1654)의 후손이다. 안방준의 자는 사언(士彦), 호는 은봉(隱峯)ㆍ우산(牛山)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밝았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따위의 국난 때에 의병에 참여했으며, 의병과 당쟁에 관한 사적 등을 정리하고 저술하여 의병사ㆍ당쟁사 연구에 이바지한 공로가 컸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