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이진사(李進士)댁에 신문을 받았다는 내용 등에 관해 답한 편지이다. 상대방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 된다고 하고 본인은 공무(公務)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보내준 8폭의 신문을 잘 받았다는 내용, 모씨(某氏)의 일은 반드시 다시 알려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혔다. 모씨의 일은 아마도 수신인과 합의하여 해결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편지의 수신인은 진사(進士) 이최선(李最善) 댁을 책임지고 있는 이승학(李承鶴)을 이른 듯하다. 편지를 쓴 날짜에 '念八日'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연도를 알 수 없다. 이 편지는 장복규가 창평군수를 맡았던 1905년 1월에서 1907년 3월 사이에 쓴 것이다.
장복규(1869~?)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공삼(公三)이고 호(號)는 학운(鶴雲)이며, 금구(金溝, 현 김제) 출신이다. 1885년 진사(進士)가 되었고,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와 창평군수 등을 역임했다. 1905년 1월에 창평군수로 발령받아 1907년 3월에 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