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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규(張復圭) 간찰(簡札) 3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자 : 장복규(張復圭) / 수취자 : 이진사댁(李進士宅)
· 작성시기 念八日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4.1 X 27.6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정의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이진사(李進士)댁에 신문을 받았다는 내용 등에 관해 전한 간찰.

해제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이진사(李進士)댁에 신문을 받았다는 내용 등에 관해 답한 편지이다. 상대방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 된다고 하고 본인은 공무(公務)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보내준 8폭의 신문을 잘 받았다는 내용, 모씨(某氏)의 일은 반드시 다시 알려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혔다. 모씨의 일은 아마도 수신인과 합의하여 해결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편지의 수신인은 진사(進士) 이최선(李最善) 댁을 책임지고 있는 이승학(李承鶴)을 이른 듯하다. 편지를 쓴 날짜에 '念八日'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연도를 알 수 없다. 이 편지는 장복규창평군수를 맡았던 1905년 1월에서 1907년 3월 사이에 쓴 것이다.
장복규(1869~?)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공삼(公三)이고 호(號)는 학운(鶴雲)이며, 금구(金溝, 현 김제) 출신이다. 1885년 진사(進士)가 되었고,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창평군수 등을 역임했다. 1905년 1월에 창평군수로 발령받아 1907년 3월에 면직되었다.
원문텍스트
[미상]
[皮封]
長田
李進士宅回納
吏上謝候


伏拜審宵落
侍體候萬安仰慰侍生一
味公擾而耳 新聞
八幅依受而事不必
更達耳餘不備上謝禮
侍生張復圭再拜
念八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