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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기응도(奇應度) 간찰(簡札) 2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자 : 기응도(奇應度) / 수취자 : 이광수(李光秀)
· 작성시기 癸巳八月十三日 (1893)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4.1 X 38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정의

1893년 8월에 기응도(奇應度)가 인척(姻戚) 이광수(李光秀)에게 화순 물염정(勿染亭) 적벽(赤壁) 모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 내용의 간찰.

해제
1893년 8월에 기응도(奇應度)가 인척(姻戚) 이광수(李光秀)에게 화순 물염정(勿染亭) 적벽(赤壁) 모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 내용의 편지이다. 초 4일에 우봉(牛峯) 안씨(安氏) 친구 편에 편지를 보냈는데, 잘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다며 답답한 마음을 표했다. 이어 요사이 부모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생활은 어떠한지 묻고, 이광수에 대한 그리움 마음을 전했다. 갈대의 흰 이슬 맺힌 가을날 그리움이 싹트고, 창에 비친 달빛이 하얗게 흘러들 때 누워서 멀리 담양에 사는 미중(美仲, 이광수의 자(字))을 떠올린다고 하며 그리움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계속해서 유람에 대한 생각을 전하고 함께 할 것을 독려했다. 처음에 금재(欽齋)구동(龜東)과 함께 먼저 이광수 집을 방문해서 능성(綾城, 현재 화순)을 관광하려 계획을 세웠고, 황룡의 중동(中洞)에 사는 김씨(金氏) 형과 사방의 학자들도 함께 움직이려 했다는 것이다. 본래 저쪽 편 사람이 아닌데도 다행히 태평성세를 만나 비록 재주도 학식도 없지만, 어찌 한 번의 거동도 없겠으며, 또 오랜 병중 생활을 털어내고 유람을 하는 것은 적막을 지키고 마음만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나을 듯 하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정답게 만나 많은 술을 마시고, 제비를 뽑아 시문(詩文)을 겨루며 호로(呼盧)와 악삭(握槊) 같은 투전 놀이도 하다 보면 더욱 호해(湖海)의 기상을 얻고 간담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석(池石)과 해망(海望)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이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원문텍스트
[미상]
[皮封]
玉山侍經案入納
執齋戚拜候書


哉生牛峯友便付書轉達否亦不
知浮沈惘然惘然更伏請比者
侍學軆珍重增福蒹葭白露所懷
伊誰每窓月流素伏枕呼美仲美仲不
答驚而思之美仲乃遙遙秋南洲初
意同欽齋龜東先叩高軒酙酌
賢從其間必綾城觀光中洞兄亦
以是起去四方學者次第發動處子
無耻於斯可見應也本非彼邊人而幸
生 聖明之世雖無才無學豈無一番
擧趾且久病餘疎暢却勝守寂傷神然
則握手丁甯在那地先卜多買樽罍
分籌鬪白呼盧握槊益得湖海氣
麤肝膽躑躅池石海望間竟不知作何
狀便匆不備上
癸巳八月十三日弟奇應度拜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