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에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 이승구(李承龜)에게 안부와 여러 가지 사정을 전한 간찰이다. 이승구(李承龜, 1860~1942)의 자(字)가 성주(聖疇)이다. 이최선(李最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숙부(叔父) 이원선(李元善)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승학과는 집안의 세세한 사정 등에 대해 의논하는 친한 형제이다.
편지 본문에서는 이승학 본인의 형편 및 집안 사정 등을 담고 있는데, 이는 이승학 가문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편지에서는 우선 3달간의 객지 생활에 대한 고충을 전하고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먼저 나온다. 이어 넷째 형수의 우례(于禮)가 너무 빨리 치른 것은 아니냐고 아쉬워했다. 여기에서 우례란 며느리가 처음으로 시집으로 들어가는 예식을 말한다. 계속해서 이승학의 객지 생활로 이승구 등이 집안일들을 감당하느라 고생하는 심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는 말로 위로의 말을 전했다. 또 숙질(叔姪)이 과거 시험을 보았고, 수중(壽重)은 무과(武科) 초시(初試)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여기서 수중은 아마도 무과에 합격한 이승학의 동생 이승한(李承漢)을 지칭하는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이승학의 경제 환경을 알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이승학은 편지에서 담양읍의 상인 국영진(鞠永趁)에게 260냥을 집전(執錢), 즉 곡식을 돈으로 환산하여 받기로 했는데, 이를 다시 엽전으로 환산하면 91냥이 된다는 것이다. 이승구가 떠나 올 때 국영진에게 올해 안에 줄 것을 재촉할 것을 당부했다. 용석(龍石)과 정춘(丁春)을 보내면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한다는 말과 이승학의 아들 광수(光秀)의 공부를 잘 봐주기를 덧붙였다. 용석과 정춘은 노비로 보인다. 또 문서 앞쪽에 추신으로 이사에 관한 내용과 누이동생의 혼사에 관한 말이 보인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