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에 김치홍(金致弘)이 66세 되던 해에 나주목(羅州牧)에 제출한 준호구(準戶口)이다. 보통 3년에 한 번 각 호의 호주(戶主)가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자세히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는데, 이 문서는 호적작성을 위해 제출하고 확인받은 문서이다.
1879년 김치홍의 준호구에서 확인되는 호의 구성원은 김치홍과 그의 부인 2인뿐이다. 다른 식솔들은 있지 않고 노비는 노(奴) 원례(元禮)가 있었으나 현재는 죽고 없다.
이 준호구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김치홍이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부(允儉), 조부(鳳垕), 증조부(重哲), 외조부(慶州鄭氏 致成)에 관한 정보와 그의 처 진주하씨(晉州河氏)에 관한 것이다. 김치홍의 처는 현재 나이가 김치홍과 같은 66세인데, 처의 정보에도 부(順三), 조부(文淑) 증조부(良海)와 외조부(金海金氏 尙玉)에 관한 정보가 실렸다.
이 문서에는 나주목에서 주묵(朱墨)으로 호구 상황을 확인한 흔적이 보이는데, 문서 앞부분에 ‘八一統五戶’라는 것은 김치홍 호수가 81통 5호에 해당한다는 것이며, 문서 하단 중간에 ‘二’ 의 주묵은 호의 구성원이 2명이라는 표시이다. 또 노비 조를 확인하면서 주목으로 표시해 두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관에서 해당 호수와 인원, 노비 수를 확인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문서에는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인장이 횡서(橫書)로 되어있으며, 목사의 서압이 갖춰져 있다.
김치홍(金致弘, 1880~1910)은 영암 출신으로, 1908년부터 1910년까지 심남일(沈南一), 박민홍(朴民洪), 박사화(朴士化) 의병 부대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치홍(金致洪), 김동필(金東弼)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가족사항 : 妻 晉州河氏(66세)
*추기: 八一統五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