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11월에 박세장(朴世章) 등이 겸성주(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소지 내용에 따르면 영암에 사는 박세장과 능주에 사는 출신(出身:과거급제자) 박태빈(朴泰彬)은 능주(綾州) 서일면(西一面) 월곡촌(月谷村) 뒤에 자신들의 선산이 있는데, 자신들은 서이면(西二面)이나 영암(靈巖)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였다. 지난달에 월곡에 살고 있는 양거익(梁居益)이 동생, 아들, 조카 삼장(三葬)을 자신들의 증조(曾祖) 무덤 가까운 곳에 투장(偸葬)을 하였다고 하면서 양거익으로 하여금 기한을 정해놓고 투장한 무덤을 파서 옮기도록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겸성주(兼城主)는 같은달 30일에 양거익이 사대부가의 산소 가까운 곳에 몰래 투장한 것은 매우 놀라운 죄이므로 적간척량(摘奸尺量)하여 처치하라는 처분을 유향소(留鄕所)로 내렸다.
소지(所志)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 발괄〔白活〕이라고도 한다. 소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므로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소지는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해, 현존하는 고문서 가운데 토지문기(土地文記)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관원은 소지의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뎨김은 소지의 왼쪽 아래 여백에 쓰며, 그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계속해서 쓰기도 하고 별지를 붙여쓰기도 하였다. 뎨김을 적은 소지는 그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그 판결에 대한 증거자료로서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