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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5년 김수(金洙) 등 상서(上書)
1825년 김수(金洙) 등 상서(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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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순조25) 2월에 남원 진사(進士) 김수(金洙) 등 64명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안신손(安信孫)의 충절에 대해 표창을 청하는 상서이다. 전라도 남원, 창평, 전주, 나주, 광주, 순창, 장수, 임실, 구례, 곡성의 유생 64명은 남원부(南原府)에 주부(主簿) 안신손(安信孫)의 정유재란때 의병활동 사실을 서술하면서 충의(忠義)가 탁월한 공적이 있으니 포증(褒贈)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 문서는 이전에 올린 소장의 처분에 따라 세초(歲抄)를 기다려 다시 올린 것이다. 이에 전라도관찰사는 '오래된 일이고 교체될 때로 이 일을 의도(議到)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는 처분을 내렸다.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조봉진(曺鳳振)이었다. 안신손의 충절 포창을 요청한 문서는 이 외에도 1825년 최갑효(崔甲孝) 등이 올린 상서가 남아있다.안신손(安信孫, 1567~1608)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후원(厚源), 호는 풍와(楓窩), 문성공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안벽(安璧)이다. 정유재란 때 남원이 적에게 포위되자 가동 50여 명과 군량 40석을 가지고 남원성에 이르렀으나 성이 이미 함락되었다. 이때 전라도관찰사 홍세공(洪世恭)이 그를 조정에 천거하여 유진장겸지군향사(留鎭將兼知軍餉事)에 임명하였다. 영남과 호남을 돌아다니며 약탈하고 있는 적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곧바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군사와 군량을 모집하고 성을 손질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민들을 불러 모아서 성을 지킬 계책을 세웠다. 또한 성묘(聖廟)를 수호하고 초하루와 그믐에는 분향하며 경내의 민심을 어루만졌다. 이후 정유재란 때의 공적을 전라도관찰사가 계문(啓聞)으로 올리고자 하였으나 그가 사양하며 올리지 말도록 하였다 한다.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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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道內進士金洙幼學崔羲澤等謹齋沐百拜上書于
巡相閤下伏以湖南一道素稱我東之齊魯也其忠義名節尤多砥礪當受兵危亂之時或蹈火冒刃守禦棘賊或召募義旅奮忠討賊之人多出於本道而雖有死生
存亡之殊其斷斷之忠炳炳之節本無二致焉盖以其心之同出於忠義也生等道內南原府有故主簿安信孫卽其人也安信孫文成公裕十一代孫也其後有文淑公諱牧文惠公
諱元崇副提學諱祖同皆以文學名世高祖諱貴行當
端宗遜位以陽城縣監役紱屛跡於南原之女院山下號白山
正宗己未 贈大司諫鄕人立祠以享之曾祖諱撝主簿祖諱克諶參奉考諱璧公胚胎前光生有異質氣岸魁偉性度忠直事親孝與友信餘力學問造詣淵深以蔭除
主簿而無意仕宦考盤於山水間操守先生業獎進後學逮夫壬辰島夷猖獗公憤忠慷慨欲擧義殲賊以雪 國恥而母夫人七耋沉病不忍離側母夫人知其意勸赴 國亂曰忠孝
不可兩全豈以病母之故不念 君父之蒙塵乎至孝所在不忍遽離而時不禁痛泣奧明年癸巳母夫人謝世纔經襄禮擬以墨衰起義時則甲午夏四月也
朝廷際有罷義兵之命公憤念垂涕曰 君父播越不能雪 國恥報 君恩其可謂爲人臣子乎居常悒悒及丁酉島夷再猘南原圍急公奮發杖釼率家僮五十名輸軍
糧四十石直抵城下則城已陷矣八忠死之公大痛曰彼亦臣子我亦臣子而彼同死報 國吾不得與之同死將何以洩此滿腔忠憤遂與再從姪判官嗣悌定議追擊倭賊未行
本道伯洪公世恭慮守成無人以公有膽略馳 啓于
朝特除留鎭將兼知軍餉事旣職事有繫則不敢離次遂送嗣悌往從趙公慶男義旅之下而公夙宵警惕殫竭心力修城池繕器械防遏嶺湖遊掠之賊募兵粟招流亡以
爲咽喉固守之計通告境內諭以安接之策守護
聖廟不廢朔望焚香每中夜北向四拜號天而祝曰願天冥佑保我東土盖其斷斷貞忠自本性中做出來一境賴公百姓安集亂已 道伯嘉其節而壯其蹟仍欲
啓聞請 褒則公力止曰徵勞何敢于恩衒能求榮非吾志也累度力辭結廬于楓巖之下自號楓窩歛跡以終世嗚呼以公忠義之卓功績之懋宜蒙 褒榮而公旣防
啓於生時人無闡揚於身後埋沒草菜今且數百年士林抑鬱愈往而深彛性攸好擧槩先呈于本府則題內如此忠義之卓節尙未蒙 褒贈之典此非但士林之抑
鬱闡揚之責亦在士林而尙今湮沒勝慨歎枚報時晩姑待歲抄宜當向事行下是乎矣以待歲抄時涉晩後故道內諸儒齊發公議玆敢擧悉仰龥於
承宣之下伏乞 採實轉達
丹扆以蒙 褒贈之典矜式瞻聆敎化幸甚
乙酉二月日
南原進士金洙 幼學崔羲澤 梁復奎 崔甲孝 李正銓 金仁鑑 尹致永 金樂麒 宋鍵 楊奎煥 黃□洙 張(火+允) 崔綱範 尹鼎錫 盧䄷 許曣 崔龜河 進士梁霖 幼學丁昌崑 洪濂 韓百祚
鄭在黙 朴夢洙 吳漢鎭 鄭在昌 高時聖 金德基 鄭在璉 昌平幼學 高時彦 李顯弼 柳濟 蘇在鶴 全州幼學 李顯黙 朴希壽 李儒永 羅州幼學 林永浩 李錫根 羅漢永 光州幼學 奇商欽 金星彦 崔寬賢 李致文 尹成鉉 金世鑑 崔光河
淳昌幼學 洪在協 楊源 申敬天 尹正鉉 長水進士 韓驥 權思銓 幼學 韓胤祚 李廷馨 任實幼學 郭載南 鄭存三 李春煥 洪鸞 求禮幼學 李章翊 高時玉 李一瑞 谷城幼學 吳廷燦 進士 申世淳 幼學 洪永宅 姜道周 等
使[着押]
(題辭)
事係年久分叱除
良遞易之
際此等事
未暇議到向事
初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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