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히 통문에 회답합니다.
이 글은 공경히 답변하고 회유(回諭)하기 위한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후학들은 선현의 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는데, 근자에는 온 세상이 세대가 멀어지고 사람이 죽고 없으며 경전이 잔멸되고 가르침이 해이해졌습니다. 나날이 오랑캐의 풍습으로 변하고 사람의 도가 쇠퇴한 이때 삼가 귀향의 말장(末狀)을 살펴보았습니다. 군자서원과 행정사는 순조 경진년(1820)에 처음 건립되어 유항재(有恒齋) 김량(金亮) 선생과 그 증손 절효공 호광(金好光), 그 아우 행정공(杏亭公) 신광(伸光) 세 선생을 제향하는 곳입니다. 고종 무진년(1869)에 비운을 맞아 끝내 훼철되는 변고를 당해서 사림들이 의지할 곳을 잃고 후손들이 한탄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백여 년 동안 사모하는 곳을 잃고 살다가 지난 경자년(1900)에 옛터를 복설하였습니다. 이때는 겨우 행정사만 복원하고 서원의 이름은 찾지 못했는데, 이후에 다행히 요즈음 규모를 넓혀서 서원의 모습을 갖추고 예전 이름으로 회복하여 변경하여 칭한다면 누군들 감동하여 어깨를 들썩이고 펄쩍 뛰지 않겠습니까. 지금 여러 존자가 계획한 성대한 일은 참으로 사문이 결속하고 회복되는 기회이니, 세 선생의 도가 아마도 세상에 다시 밝혀질 것입니다.
저희는 외람되이 서울 성균관의 자리에 있지만, 가르치고 배우며 어진 이를 사모하는 정성은 본성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을 것입니다. 학문을 강론하고 도를 밝혀서 사문이 흥성하는 도에 보탬이 된다면 몹시 다행일 것입니다. 이에 성균관의 여론을 두루 수렴하여 찬양합니다.
이상은 강진향교 유림 여러분께 통문에 공경히 회답한 것입니다.
단군 기원 4341년(2008) 무자 12월 모일에 성균관장 최근덕·수석부관장 어약(魚躍)·부관장 김태우(金泰瑀)·부관장 이영호(李英鎬)·부관장 성지월(成芝月)·부관장 정윤수(鄭玧洙)·부관장 성원모(成元模)·부관장 류시보(柳時甫)·부관장 정순도(鄭淳度)·부관장 김병천(金柄天)·부관장 박남호(朴楠浩)·부관장 박종은(朴鍾殷)·부관장 공병철(孔炳哲)·부관장 장영태(蔣永台)·부관장 양재영(梁在榮)·부관장 임석구(林錫九)·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 강대봉(姜大奉)·부산본부회장 양규명(梁奎明)·대구본부회장 우정택(禹貞澤)·인천본부회장 이진성(李珍成)·광주본부회장 박태근(朴泰根)·대전본부회장 성백일(成百一)·울산본부회장 서태수(徐太洙)·경기본부회장 조남철(趙南喆)· 강원도본부회장 윤범모(尹範模)·충북도본부회장 연병권(延秉權)·충남도본부회장 윤준기(尹竣基)·전북도본부회장 윤재옥(尹在玉)·경북도본부회장 박명준(朴命俊)·경남도본부회장 배도석(裵鍍奭)·제주도본부회장 고창봉(高昌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