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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나익영(羅益榮) 편지(便紙)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근현대문서-문서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나익영(羅益榮) / 수취자 : 나종우(羅鍾宇)
· 작성시기 七月二十六日 (1945)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18.8 X 27.2
· 소장처 현소장처 : 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나주나씨
· 참고문헌
  • · 연결자료
  • 1945년 나익영(羅益榮) 편지(便紙)
  • 나주정씨족보소재(羅州鄭氏族譜所載)
  • 정의

    1945년 7월 26일에 나익영(羅益榮)이 나종우(羅鍾宇)에게 보낸 편지(便紙).

    해제
    1945년 7월 26일에 서울의 나익영(羅益榮, 1908~1980)이 광산군 대촌면의 나종우(羅鍾宇, 1878~1951)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자기 집안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용건을 8개 항목으로 정리하였다. 자신의 둘째 아우 나선영(羅善榮)은 원주의 문막금융조합(文幕金融組合) 이사(理事)로 나갔고, 셋째 아우 나순영(羅順榮)은 평강대학(平康大學) 요양소에 보임되었으며, 넷째 아우 나운영(羅運榮)은 중앙중학교 교원이 되었으며 결혼한 후에 동소문 안으로 분가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매제(妹弟)는 적성국등학교(積城國民學校)에 재직 중이라 마포의 집에는 5명뿐인데, 피란하라는 명령이 내려서 걱정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8개의 용건을 적었다. 첫 번째는 한림공(翰林公) 비석의 수난에 대한 대책으로, 난이 평정된 후에 관에 고하여 다시 묘의(墓儀)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방목(榜目) 간행(刊行)에 관한 것으로, 책의(冊衣, 표지)를 구하지 못해 배포하지 못했다고 하고, 약 20부를 보낼 것이니 보관할 만한 곳에 나누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또, 우선 공람(供覽)을 위해 1책을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세 번째는 덕암정사(德岩精舍)의 협력 문제로, 익당숙(益堂叔)이 임진강 하구의 파주(坡州) 별업(別業, 별장)으로 소개(疏開)를 결정하여 의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네 번째는 사료를 보내는 일로, 나이헌(羅以櫶) 공이 회니(懷尼)의 일에 관해 상소한 사실과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의 서원 건립 문제에 남인(南人)이 협력한 사실을 베껴서 보낸다고 하였다. 다섯 번째는 저지(楮紙) 회수 때문에 희귀한 서책이 없어진 일이 없는지 묻는 내용이다. 여섯 번째는 이여재기(二如齋記)를 베껴서 보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일곱 번째는 송현(松峴), 장동(長洞), 주룡(注龍)의 산도(山圖)를 볼 수 있도록 주선해 주기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여덟 번째는 여황산(艅艎山) 봉심하는 일은 동지를 얻었는지 묻는 내용이다.
    원문텍스트
    [미상]
    伏中日氣가 如此陰冷하니 年事가 可憂로
    소이다. 謹未審夏來에
    氣軆候神護萬安하옵시며 宅內諸節
    이 均安하심을 伏祝이오며 駐滿鳳觀兩
    姪도 安過하기를 伏冀하옵나이다. 第族弟는
    無大故니 私幸이올시다. 二弟善榮은
    原州文幕金融組合理事로 出去하고 三
    弟順榮은 平康大學療養所로 出補가
    되고 四弟運榮은 中央中學敎員이 되여
    成娶後 東小門內 泮宮案岡으로 分戶하
    엿스며 妹弟는 積城國民學校에서 奉職中
    而麻浦家에는 只在五人인데 老幼避亂之令
    이 下하야 祖孫이 問題라. 因公務로 退京도 不
    可能하고 原州는 金融機關이니 不安하고 平
    康積城은 依身키 至難하며 延安도 疏開
    에는 不適當하니 坐而待死케 되엿스니 可
    歎可歎이로소이다.
    一. 翰林公碑受難―對策
    戰爭이 急轉하야 警署도 如此私家紀綱
    問題를 處理할 餘暇와 誠意가 無할
    뜻하오니 雖恐懼莫甚이나 以待亂平
    하야 告官受決하고 更修墓儀가 似好며
    二. 榜目刊行事
    假結冊까지 旣畢이나 但冊衣를 求之不
    得하야 未頒布가 되엿는데 從速結冊
    郵呈爲計오며 約二十部를 送呈하
    겟사오니 可藏處에 頒秩하여 쥬시기
    를 伏望하나이다. 爲先供覽次로 一冊
    만 不日間 送呈爲計오며
    三. 德岩精舍協力事
    益堂叔께서는 不在地主退去之令이 未久
    에 올 뜻하야 盡霄〖宵〗로 心慮中 喪心之餘
    에 身弱하야지사 大小家事에도 少不動
    念하시고 拱手傍觀中이시도니 近日에
    는 臨津河口坡州別業으로 疎開를 決
    定하신 模樣인데 確實히 病格이라
    受議가 못 되엿고 機會만 엿보고 잇슴니
    다.
    四. 史料送呈事
    讀史中 以櫶公이 以懷尼事로 呈疏한
    事實과 鄭困齋建院事로 午人이
    協力한 事實이 잇기에 謄抄送呈함니
    다.
    五. 傳聞컨ᄃᆡᆫ 楮紙回收事로 稀貴書冊
    이 多多湮沒이 된 模樣인데 松島爺之家
    記는 如何히 되엿는지 궁금千萬이올니
    다.
    六. 二如齋記를 謄하야 下送하여 쥬시기를 바
    라며
    七. 松{山/見}、長洞、注竜山圖를 奉覽코자 하
    오니 又一次雲采、性華兩族丈에 轉
    書하사 貸與토록 하여 쥬시기를
    並請하나이다.
    八. 艅艎山奉審事는 或 同志를 어드셨는
    지 願聞이로소이다.

    餘不備禮 上書.
    七月二十六日. 益榮 再拜

    (皮封_前面)
    全羅南道 光山郡 大村面
    石亭里
    羅 鍾 宇 氏 宅
    [郵便消印: 20.7.26]

    (皮封_背面)
    京城府 鍾路區 東崇町 一九九
    京城工業專門學校
    松島益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