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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술년 이병채(李秉采) 등 상서(上書)
갑술년 이병채(李秉采) 등 상서(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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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이병채(李秉采) / 수취자 : 암행어사(暗行御史) · 작성시기 甲戌六月 日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104.6 X 59.0 / 서명 : [着押] · 소장처 현소장처 : 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광주 나주나씨 · 참고문헌 · 연결자료 - 갑술년 이병채(李秉采) 등 상서(上書)
- 을축년 최인국(崔麟國) 등 상서(上書)
-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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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갑술년 6월에 나주향중다사 유학 이병채 등 13명이 암행어사에게 올림 상서로, 상서의 주된 목적은 나주 출신 인물 나동익(羅東翊)의 지극한 효행을 조정에 천거하여 포상해 달라는 청원이다. 문서 서두에서 발신자들은 옛 고사에 나오는 효행 사례인 잉어·백작(白鵲), 눈 속의 죽순,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린 고사를 인용하며, 고대의 효자들도 드물었는데 근세에 이와 같은 사례를 직접 보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주인공 나동익은 본래 나주의 명문가 출신으로, 증조부와 선조가 모두 높은 벼슬과 충절을 인정받은 가계였음을 밝히고 있다.나동익은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를 섬겼는데, 어머니가 병환에 걸려 위독할 때 손가락을 베어 흘린 피를 입에 부어 다시 소생시켰으며, 이후 병세가 재발하자 또다시 같은 방법으로 위급한 목숨을 이어주었다. 또한 부친이 병에 걸렸을 때도 동일하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일시적으로 회생케 하였다. 발신자들은 이를 두고 '이는 참으로 효심이 아니면 끝까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칭송하며, 그의 지극한 정성과 예법에 맞는 상례(喪禮) 수행을 전하고 있다.청원자들은 이러한 사례가 이미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아직 국가 차원의 포상(褒揚)을 받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였다. 따라서 이번에 반드시 조정에 보고하여 표창과 상훈이 내려지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암행어서는 탁월한 행실에 대한 포창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처분을 내렸다.상서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단순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본받고 기억해야 할 윤리적 모범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여러 차례 포상을 건의했음에도 조정이 응답하지 않자 다시금 공적으로 기록해 후대에 남기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문서 말미에서는 당시 행정기관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포상 및 공적 기록화를 요청하고 있다.
- 원문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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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羅州鄕中多士幼學李秉采等謹齎沐上書于
繡衣閤下 伏以古之稱孝者或有氷鯉白鵲之應 又或有雪筍寒苽之感 孝則孝矣 而特以斫指灌血 能延旣絶之命者 可或而不可常 可聞而不可見 幸於
近世得有以及見者 乃本州士人羅東翊其人也 大抵東翊卽㫌閭孝子縣 贈左贊成諱士忱九世孫 贈謚忠烈兵曺判書諱德憲八世孫也 忠孝故家
盖有淵源 粤自髫齡 平日愛親之誠 幼年供子之職純實無僞 不以皎皎而勉 不以冥冥而惰 孝哉若人也 恃怙在堂 出而侍嚴 入而奉慈 雖枚果片鱗 非餕
餘未甞經 自入口十餘年如一日 鄕隣𣅜以孝童目之矣 去癸卯春 其母夫人偶得無何之祟 沈綿褥席 方至凜綴之際 甞糞善試疾 祝天代壽 靡不用極 而誠孝所
及醫藥無效 乃至殞絶之境 是時東翊之年十六歲弱冠也 乃斫其左手 五指俱爛 灌其淋漓之血於母喉 須臾得甦 過數日症候又急 又裂其指灌口 乃延旣絶
之命 𣅜曰是母之還甦 是子之誠孝也云矣 又於甲寅年其父遘疾 方當殞絶 斷指灌血 調藥以進 回甦數日 竟終天年先時之斫指後日之斷指如非孝字上做
來之心 則那能終始如一乎 况其前後守喪之道顔色之憔悴哀毁之踰閑鄕鄰之耳濡目染者也 所恨孝不能延壽 誠不能劑死 未盡其性分之所欲爲 而不𦍒
短逝 仁者必壽之說 特於斯人也 無驗矣 生等居同一鄕 不勝艶慕 伏陳薦剡者 非止一再 而尙未蒙褒揚之禮 玆豈非士林之沈鬱 而昭代之欠典耶 際玆
神明按廉之下 敢此齊𥸤 伏願 閤下特嘉東翊特異之行上徹 天陞 得蒙褒賞之典 以爲㫌淑樹風之地 千萬祈懇之至
行下向敎是事
繡衣 閤下 處分
甲戌六月 日 幼學 李秉采 朴敬壽 李弼九 鄭碩基 林瑧洙 吳廉 鄭在南 梁相衡 金在潤 柳文逵 安志彦 朴齊嘗 李臣緖 等
卓異之行聞甚欽歎 褒闡之擧不容小緩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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