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렉토리열람
- 유형분류
- 곽종석(郭鍾錫) 상소초(上疏抄)
곽종석(郭鍾錫) 상소초(上疏抄)
- 기본정보
- 해제
-
1910년대에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이 고종에게 올린 상소와 그에 대한 고종의 비답, 김세동(金世東)의 시를 베껴 놓은 것이다. 곽종석은 고종이 사직(社稷)을 위해 죽지 않고 옥체를 지키고 있는 것, 원수의 나라에 나라를 맡긴 것 등을 비판하고, 나라는 망할 수 있지만 도(道)는 망할 수 없으며, 임금은 굽힐 수 있지만 도는 굽힐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세동 등이 가는 것을 정지해 줄 것을 청하였다. 고종은 곽종석의 상소에 대해 조목조목 변명하였는데, 그 가운데 죽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나라가 망한 초기에는 죽을 마음이 있었지만 마음이 굳건하지 못했으며, 지금 덕수궁 안에서 죽는 것은 사직, 춘추(春秋), 천하(天下), 신민(臣民)과 관련하여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하였다. 김세동 등을 멈추어 달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직접 가지도 않으면서 남을 막고자 하는 것이냐며 비판하였다. 비답을 마치면서 지금부터 곽종석과 자신의 군신관계를 영원히 끊고, 자신이 죽은 뒤에 곽종석이 죽는 날을 기다려 일일이 변론할 것이라고 하였다. 문서의 끝에는 '김세동이 곽종석의 벽에 제한 시[金世東題郭鍾錫壁上詩]'가 적혀 있다.상소의 첫머리에 이름을 '곽도(郭鋾)'로 고쳤음을 언급하였는데, 곽종석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 개명하였고 1919년에 사망하였으므로 발급 연도를 '1910년대'라고 하였다.김세동(1870~1942)은 본관이 의성(義城)이고, 자는 성칙(聖則), 호는 심대(心臺)이다. 아버지는 김병락(金柄洛)이고,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안동군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났다. 「묘지화장장 매장 및 화장취체규칙」의 시행에 반대하여 1915년 8월에 문중 회의를 열고 문서를 배포한 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에는 파리 강화회의를 위해 자금 모집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겪었다.
- 원문텍스트
-
-
[미상]▣▣▣▣▣▣(郭鍾錫上疏文)
▣郭鍾錫更名鋾 惶恐無地 謹百拜淚落言 陛下旣▣(不)能辦殉社於徃▣▣
▣▣可恬然愉然 自處以安樂公之昏懦 保養玉軆 延長寶甲 以待天心之悔
▣▣(人謀)之副 而恐不須呶呶於人也 奈之何 不耐煩欝 經營排劃 內鑠神聰 外招毒
{示+火}也 從古天下 未聞責國於讎邦而欲遂其願者也 索肉於虎腸 乞蛙於蛇
口 三尺童子 猶知爲笑事 況臣乎 以道事君之地 臣所責者道也 國可亡也 道
▣▣▣(不可亡)也 君可屈也 道不可屈也 但不事二君 爲臣秉執 伏願 陛下 ▣▣▣(留神澄)
亮 今此金世東諸人之行 姑爲停止焉 病伏八年 昏迷且甚 臨奏不敢張▣(皇)
謹百拜破格以聞
批
片幅所陳 衷赤所發 無非採納 然而卿甚誤解予本意 不勝悶欝 玆乃一一
卞破於卿奏下 卿其不厭煩虛受焉 向來亡國之初 予豈無殉社之心 但其時卽五
▣(十)年安養之餘也 此心未堅 徒愛一身之命 不念社稷之鄭重 難耐霎時之▣
不能行可行之事 一自丁未以後 八年拘束 無異六紀之囹圄 悔過自責矣 雖今▣▣
下一死 固非可惜 然捨其當死之前日 今若自盡於德壽宮之內 則一無功效於社
稷 一無方澄於春秋 一無發明於天下 一無見跡於臣民 徒然未免爲浪死 何哉 今此
金世東諸人之行 豈畏招來之毒{示+火}也 此不過憑得一死階梯也 所以預拱臣子
身 而諸家之不用吾冷屍之命 人心物情之固然也 予欲一一致慨於卿 而以若
卿之▣(地) 牢拒至此哉 予未多聞博識之人 雖未知文學之所見 然而抑有不▣▣▣
焉 卿之奏有曰 陛下不能辦殉死於徃日 然好生惡死人之常情也 卿其▣▣
殉社自廢 則可知予命之難辦 且臣子道理 面折爭言 可也 歷覽經傳 ▣▣
有唯直君死之證㨿乎 又曰恬然愉然自處以安樂公昏懦 然安樂公但▣(昏)
懦而止矣 豈有回復劉氏宗社乎 又曰保養玉軆 延長寶甲 以待天心之悔
人謀之副 然予得罪於天 得罪於人 天何憐予而悔之 人誰爲予而謀之哉
又曰 未聞責國於讎邦 然文天祥燕獄之死 不曰責國於讎邦乎 又曰 國▣▣▣(可亡也)
道不可亡也 君可屈也 道不可屈也 然無父無君之人 亦有道乎 又曰 不事二君
爲臣秉執 然自身妻孥立於蠻酋之帳籍 而不爲祿仕於日本 則不曰日
本之臣民 而但安居高臥於伽倻白雲 觀此世如康献 太祖之世 隱然自處 ▣
吉注書之出處乎 又曰 金世東諸人之行 姑爲停止 然卿雖不徃 又欲沮人之行乎
姑字裏許 未知有何樣妙策 而徒爲退托之良方 不免爲誘外術法 則▣(予)
不欲見欺此等說話 而予有所傳諭於卿者 累累申申 而卿問東答西 所謂
片奏 不曰卿之出處 而卽欲停人之行乎 蔽一言 予爲亡國之主 不死何爲
卿爲亡國之大夫 不死復何營哉 自今以後 卿與予永絶君臣二字 吾入地之後
待卿臥席終身之日 對當一一卞破泉臺相面之日矣
金世東題郭鍾錫壁上詩
東南風雨釼塵斜 爲國孤臣不顧家 擇鳥尙知前日木 癡蝴不待後春
花 有文如子無文可 得志其人失志多 我見君生生亦死 可憐一▣(笑)
渡滄波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