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고종 19) 1월에 부안현(扶安縣)에서 하동수촌(下東藪村)에 사는 고제희(高濟羲)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이다. 호주(戶主)인 고제희는 나이가 62세로 임오년(壬午年)생이며,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고제희의 사조(四祖)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고오진(高五鎭), 조부는 고시현(高時顯), 증조부는 고석겸(高碩謙)이고, 외조부는 류동기(柳東箕)로 본관이 서산(瑞山)이다. 고제희의 아내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인데, 나이는 65세, 무인년(戊寅年)생이다. 아내의 사조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이필전(李弼銓), 조부는 이재택(李在澤), 증조부는 이형징(李衡徵)이고, 외조부는 본관이 창녕(昌寧)인 조영국(曺榮國)이다. 데리고 사는 가족 구성원으로는 모두 6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들인 유학(幼學) 고찬주(高燦柱, 29세, 갑인생), 출계자(出系子)인 출신(出身) 고헌주(高憲柱, 44세, 기해생), 서자(庶子)인 유학 고건주(高建柱, 28세, 을묘생), 종손(從孫)인 유학 고광욱(高光煜, 18세, 을축생), 조카인 출신 고기주(高起柱, 53세, 경인생), 종손인 유학 고광수(高光洙, 29세, 갑인생) 등이다. 문서의 왼쪽 하단에는 노비(奴婢) 11명의 이름과 나이, 생년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남자종은 4명, 여자종은 7명이다.
고제희(1822~1886.6.8.)는 아들 고헌주(高憲柱)를 맏형인 고제호(高濟浩)의 양자로 보냈고, 고찬주를 양자로 들였다. 고찬주(1854~1885.5.24.)는 족보에 고찬주(高贊柱)라고 되어 있는데, 생부는 고제성(高濟聲)이고, 자는 자영(自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