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 19일에 죽정서원(竹亭書院) 및 조양재영당(朝陽齋影堂)의 유회소(儒會所)에서 최영암(崔英巖)에게 유사(有司)로 추천되어 선정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망기(望記)이다. 원장(院長)과 장의(掌議)를 적은 쪽지가 붙어 있는데, 원장은 김영달(金永達)이고, 장의는 최화열(崔和烈)이다.
죽정서원은 1681년(숙종 7)에 함양박씨(咸陽朴氏) 영암 입향조인 박성건(朴成乾)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683년에 박권(朴權)과 박규정(朴奎精), 1726년에 이만성(李晩成), 1835년에 박승원(朴承源)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61년에 복원하였다.
조양재영당은 조양재 박성오(朴省吾, 1589~1651)를 기리기 위해 죽정서원에 지은 건물로, 1893년에 송용신(宋容信)이 그린 영정이 남아있다. 박성오는 본관이 함양이고, 자는 자안(子安), 호는 조양재이다. 박권의 현손(玄孫)으로, 효자로서 유명하였다. 인조반정과 이괄(李适)의 난 때 임금을 호종(扈從)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과 진무공신(振武功臣)이 되었으며, 병자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으로 임금을 호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