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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최영암(崔英巖) 망기(望記)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죽정서원급조양재영당유회소(竹亭書院及朝陽齋影堂儒會所) / 수취자 : 최영암(崔英巖)
· 작성시기 己酉十月十九日 (1969)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31.0 X 55.6
· 소장처 현소장처 : 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영암 해주최씨 송남가
· 참고문헌
  • 정의

    1969년 10월 19일에 죽정서원(竹亭書院) 및 조양재영당유회소(朝陽齋影堂儒會所)에서 최영암(崔英巖)에게 발급한 망기(望記).

    해제
    1969년 10월 19일에 죽정서원(竹亭書院) 및 조양재영당(朝陽齋影堂)의 유회소(儒會所)에서 최영암(崔英巖)에게 유사(有司)로 추천되어 선정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망기(望記)이다. 원장(院長)과 장의(掌議)를 적은 쪽지가 붙어 있는데, 원장은 김영달(金永達)이고, 장의는 최화열(崔和烈)이다.
    죽정서원은 1681년(숙종 7)에 함양박씨(咸陽朴氏) 영암 입향조인 박성건(朴成乾)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683년에 박권(朴權)과 박규정(朴奎精), 1726년에 이만성(李晩成), 1835년에 박승원(朴承源)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61년에 복원하였다.
    조양재영당은 조양재 박성오(朴省吾, 1589~1651)를 기리기 위해 죽정서원에 지은 건물로, 1893년에 송용신(宋容信)이 그린 영정이 남아있다. 박성오는 본관이 함양이고, 자는 자안(子安), 호는 조양재이다. 박권의 현손(玄孫)으로, 효자로서 유명하였다. 인조반정과 이괄(李适)의 난 때 임금을 호종(扈從)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과 진무공신(振武功臣)이 되었으며, 병자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으로 임금을 호종하였다.
    원문텍스트
    [미상]

    崔英巖
    本院及朝陽齋影堂
    有司
    貴啣下薦定恭惟
    照亮
    己酉十月十九日[印]
    竹亭書院及朝陽齋影堂
    儒會所

    (籤紙)
    院長 金永達
    掌議 崔和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