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이 격조한 나머지 서신을 받고 보니 마치 다시 얼굴을 뵈온 듯합니다. 더욱이 봄 샘 추위 속에 고요한 생활이 더욱 평안하심을 알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위로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신으로나 뵙는 일이 모두 가로막힘은 어쩔 수 없는 형편이지만, 서글픈 바는 형제가 모두 늙어가는데 다시 만날 기약이 없다는 점입니다.
족종(族從)은 두서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성상의 은혜를 입어 많은 사람을 따라 품계(品階)가 올라 그 영화가 선조에 미쳤으니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 끝이 없으나 나라에 보답할 길이 없으니 이 때문에 스스로 가련할 뿐입니다. 기박한 운명에 용렬한 재주로 늙어갈수록 더욱 곤궁하여 추위와 굶주림을 면할 수 없으니 스스로 돌이켜 보면서 분수에 편안하지 않을 수 없으나 때로 이를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우리 집 아이는 겨우 죽음을 면했습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감당하여 지낼 수 있는 바가 아니니 걱정과 가련할 뿐입니다.
이 서신은 어쩌면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글이 아닌 줄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노쇠한 지경에 스스로 몸조심하면서 평온하게 남은 날을 지내시길 바랍니다.
나머지는 정신이 흐림으로써 길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굽어살펴주시기를 생각하면서 삼가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갑인 2월 27일, 족종(族從) 인호(仁浩) 머리 조아리고 올림
송파(松坡) 회납(回納)
근동(芹洞) 족종(族從) 사장(謝狀) 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