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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임상중(林象中) 간찰(簡札)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임상중(林象中)
· 작성시기 己酉至月初四日 (1789)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9.2 X 33.0
· 소장처 현소장처 : 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나주 나주임씨 송파공 종중
· 참고문헌
  • 정의

    1789년 11월 4일에 족종(族從) 임상중(林象中)이 보내는 간찰(簡札).

    원문텍스트
    [미상]
    가을철에 일찍이 장아(長衙)의 인편에 서신 한 통을 보냈는데, 받아보셨는지?
    깊어가는 겨울에 동지가 바로 앞에 있는데 고요한 생활 속에 요사이 회복은 어떻습니까? 여름철에 겪었던 우환은 요즘 들어 모두 사라져 남은 걱정거리가 없으신지? 염려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족종(族從)은 겨울철 이후로 해묵은 고질병이 다시 도져 문을 걸어 닫고 자리에 누워 세상 일을 알 길 없으니 가련함을 어찌하겠습니까?
    듣자니 문중 어른이 막내아들을 잃었다고 하니 그 정경은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여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다가 또한 문화현(文化縣) 유배지에서의 안부 서신은 겨우 들었으나 아직도 사면받아 돌아올 길이 없으니 답답하고 걱정되는 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족보 인쇄에 관한 일은 경주에서 그곳으로 무슨 소식이 있었습니까? 가을에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내어 초본을 올려보내면 서울에서 교열한 후에 다시 그곳으로 보내어 정본(正本)을 정리할 생각이었으나, 아직 한 글자 회신이 없으니 매우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인쇄하고자 한다면 내년 봄에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이는 겨울 이전에 모두 사들여야 그때 군색하거나 다급한 한심스러운 일이 없을 것임에도 이런 일을 경영한다는 바를 들은 적이 없으니 장차 어떻게 내년 봄에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족보는 앞서 4책으로 출간하겠다고 하니 1건당 8속의 종이가 필요한바, 80건을 인쇄하기로 하면 640속의 종이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이를 인쇄할 때 이런저런 일로 소모되는 종이가 있어야 하니 마땅히 먼저 7백 속의 종이를 구매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일상으로 사용하는 백지를 쓸 수 없습니다. 길이, 너비, 두께는 별도로 족보 맞춤용으로 종이를 떠야 할 것인바, 한 속의 종잇값이 그 얼마나 되려는지? 그 종잇값이 얼마나 들지를 물어보고 세전에 구매할 수 있도록 다짐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초산(楚山) 일가에서 보내온 돈은 지난번 1백 전이었기에, 장성의 일가 또한 의당 1백 전을 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양주 일가가 보내온 20전은 원보(遠甫)가 받아 갔습니다.
    족보의 초고를 보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를 가지고 내려가려고 합니다. 족보의 초고를 보내오지 않음으로써 아직 내려가지 못했지만, 조만간에 내려가면 도합 액수는 2백 전이니 먼저 이 금액으로 종이를 구매할 터전을 마련함이 좋을듯합니다.
    원보(遠甫)의 발길은 족보의 초록을 기다린 까닭에 지금까지 시간을 끌고 있으나 이제는 하나같이 늦출 수만은 없습니다. 바야흐로 이달 내에 내려가 모든 일을 상의하고자 합니다.
    서울의 배당금은 이미 낼 만한 사람이 없는데, 그곳의 모든 의논은 모두가 서울이 이와 같음으로써 지방에서도 관망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마땅히 이를 필요한 금액을 수합하여 내년 봄에 간행하는 데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모든 일가에게 말하여 다시 수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원보가 가는 길에 자세히 말할 것이기에 격식을 갖추지 않고 올립니다.
    기유 동짓달 초4일, 족종(族從) 상중(象中) 머리 조아리고 올림

    지난번 『취죽유고(醉竹遺稿)』를 바야흐로 세고(世稿)의 초록과 단단히 고증하고, 바로 장아(長衙)에게 보내어 반드시 믿을만한 인편에 올려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미상]
    秋間嘗付一書於長衙便果卽
    登照耶冬序已深南至在卽
    靜履近復如何夏間憂嘅近皆沈
    霽無餘憂否奉慮之至族從自當
    寒節以來宿病更添閉門委席
    了無世況自憐奈何聞門長老人
    遭季胤之喪云其情境令人慘
    怛不可言此亦文化謫中安信才得
    聞而尙無得還之道情私悶菀如何
    譜事自慶州有何所報於那中耶
    秋間屢書要爲上送草本則自京考
    閱後轉送那中謄出正本計矣尙
    無一字回語極爲訝惑印役旣欲開春
    後卽始則紙物冬前盡數貿置然後可
    無臨時窘急之嘅而未聞有所經紀將
    何以及春始役耶譜冊旣爲四卷則一
    件所入當爲八束
    紙以八十件印出
    爲定則六百四十
    束紙可以當之
    其外又有謄出
    時雜用第當
    先貿七百束紙
    此不可以常用白
    紙爲之長廣厚
    薄別爲譜冊浮
    出則一束價當
    爲幾許云耶第
    問其價入多少期
    於歲前貿取如何
    楚山錢前去爲百
    數長城亦當出
    百數云楊州所送
    二十則遠甫受去
    待譜草來欲持
    而下去以譜草
    之不來尙
    未去早晩
    下去則都
    數不下二百
    餘數先以此圖貿紙物之地爲好矣遠甫之行待譜草
    之故至今遷就今則不可一向緩忽方欲此月內下去
    商議凡事之地耳京中名下錢旣無可出者
    而那中諸議皆以京中之如此鄕間亦觀望云第當收合
    以送趁明春印役送之以此意言于諸一家更爲
    收合之地如何都在遠甫行詳報姑不宣狀
    己酉至月初四日族從象中頓
    前去醉竹遺稿方有緊考於世稿之抄
    集幸卽送長衙必付信便上送之地爲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