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에 일찍이 장아(長衙)의 인편에 서신 한 통을 보냈는데, 받아보셨는지?
깊어가는 겨울에 동지가 바로 앞에 있는데 고요한 생활 속에 요사이 회복은 어떻습니까? 여름철에 겪었던 우환은 요즘 들어 모두 사라져 남은 걱정거리가 없으신지? 염려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족종(族從)은 겨울철 이후로 해묵은 고질병이 다시 도져 문을 걸어 닫고 자리에 누워 세상 일을 알 길 없으니 가련함을 어찌하겠습니까?
듣자니 문중 어른이 막내아들을 잃었다고 하니 그 정경은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여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다가 또한 문화현(文化縣) 유배지에서의 안부 서신은 겨우 들었으나 아직도 사면받아 돌아올 길이 없으니 답답하고 걱정되는 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족보 인쇄에 관한 일은 경주에서 그곳으로 무슨 소식이 있었습니까? 가을에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내어 초본을 올려보내면 서울에서 교열한 후에 다시 그곳으로 보내어 정본(正本)을 정리할 생각이었으나, 아직 한 글자 회신이 없으니 매우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인쇄하고자 한다면 내년 봄에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이는 겨울 이전에 모두 사들여야 그때 군색하거나 다급한 한심스러운 일이 없을 것임에도 이런 일을 경영한다는 바를 들은 적이 없으니 장차 어떻게 내년 봄에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족보는 앞서 4책으로 출간하겠다고 하니 1건당 8속의 종이가 필요한바, 80건을 인쇄하기로 하면 640속의 종이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이를 인쇄할 때 이런저런 일로 소모되는 종이가 있어야 하니 마땅히 먼저 7백 속의 종이를 구매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일상으로 사용하는 백지를 쓸 수 없습니다. 길이, 너비, 두께는 별도로 족보 맞춤용으로 종이를 떠야 할 것인바, 한 속의 종잇값이 그 얼마나 되려는지? 그 종잇값이 얼마나 들지를 물어보고 세전에 구매할 수 있도록 다짐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초산(楚山) 일가에서 보내온 돈은 지난번 1백 전이었기에, 장성의 일가 또한 의당 1백 전을 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양주 일가가 보내온 20전은 원보(遠甫)가 받아 갔습니다.
족보의 초고를 보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를 가지고 내려가려고 합니다. 족보의 초고를 보내오지 않음으로써 아직 내려가지 못했지만, 조만간에 내려가면 도합 액수는 2백 전이니 먼저 이 금액으로 종이를 구매할 터전을 마련함이 좋을듯합니다.
원보(遠甫)의 발길은 족보의 초록을 기다린 까닭에 지금까지 시간을 끌고 있으나 이제는 하나같이 늦출 수만은 없습니다. 바야흐로 이달 내에 내려가 모든 일을 상의하고자 합니다.
서울의 배당금은 이미 낼 만한 사람이 없는데, 그곳의 모든 의논은 모두가 서울이 이와 같음으로써 지방에서도 관망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마땅히 이를 필요한 금액을 수합하여 내년 봄에 간행하는 데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모든 일가에게 말하여 다시 수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원보가 가는 길에 자세히 말할 것이기에 격식을 갖추지 않고 올립니다.
기유 동짓달 초4일, 족종(族從) 상중(象中) 머리 조아리고 올림
지난번 『취죽유고(醉竹遺稿)』를 바야흐로 세고(世稿)의 초록과 단단히 고증하고, 바로 장아(長衙)에게 보내어 반드시 믿을만한 인편에 올려보내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