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에 매우 소식이 격조하여 서글픈 마음이었는데, 곧 장아(長衙)의 인편으로 인하여 열흘 사이에 보내주신 서신을 받고서야 요즘 고요한 생활에 평안하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러러 위안된 마음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서신을 보낸 지, 이미 수십 일이 되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모든 일은 한결같이 잘 되어갑니까? 거듭 도리어 우러러 그리는 마음뿐입니다.
족종의 병세(病勢)는 차가운 날씨로 다시 재발할까 염려입니다. 앞으로의 추위에 더욱 병으로 앓아눕게 될까 두렵습니다. 괴롭고 가련한 사정을 어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두 분의 진사께서 사면을 받아 집에 돌아오셨다는 것은, 실로 생각 밖의 일이라, 감축드리오며, 그 크나큰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사(都事)는 아직 사면받을 기약이 없으니 그저 조용히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족보의 일은 상령(商令)의 서신을 또한 이달 초에 보았습니다. 초본은 이미 수정하였으나, 아직 교정은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가까운 날에 올려보내 드릴 것이오니 한 차례 보신 후에 다시 장아(長衙)로 보내어 이를 정서(淨書)하여 정본(正本)을 마련할 터전으로 삼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으면 합니다.
다만 이달부터 경주 관아의 공무가 반드시 정신없이 바쁠 것이며, 상령(商令) 또한 맏형수의 초상을 당하여 반드시 슬픔과 일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교정의 일에 점차 차질이 생길까 염려가 됩니다.
족보 끝권에 비문과 행장을 베껴 넣는다는 뜻은 앞서 이미 상의하여 정한 일입니다. 이번 서신에 또다시 이런 사실을 자세히 알려서 그 마땅히 넣어야 할 여러 집안에서는 이를 한 건의 기록으로 만들어서 담당한 곳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기록들을 보낸 서울에서는 바야흐로 비지(碑誌) 행장 및 혹 빠진 부분을 찾아서 찾는 대로 기록하여 보낼 생각입니다.
세고(世稿)의 출간 또한 이미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중에 서신 또한 알려왔는데, 때마침 종가의 옛 문적(文籍) 속에서 세고의 초본을 찾았습니다. 이를 증거로 삼을만한데, 그 가운데 또한 마땅히 삭제하여 수정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澤夏)가 모아놓은 책자에 관해서도 또한 이 가운데에 비록 번잡한 문장이 많아 규격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 취할 만한 부분 또한 많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이를 동도(東都: 경주)로 보내어 상령에게 사방으로 고찰하고 모두 취할 계책으로 삼고자 합니다. 다만 서로 마주하여 자세히 의논하여 충분히 상의를 거친 뒤에 하나로 귀결지을 수 없으니 이것이 한심스럽고 한심스럽습니다.
족보의 일은 이미 내년 봄에 시작하기로 하였으니 먼저 종이를 준비한 후에 활자의 일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경비나 인력을 모아야 할 것이나 이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날 초산(楚山) 일가들이 보내온 것과 장성(長城)의 일가 또한 도움이 있을 것 같으며, 양주 일가들이 보내온 것 또한 마땅히 원보(遠甫)에게 보낼 것이니 그런 돈들이 모이는 대로 먼저 종이를 사들이어, 그 얼마나 간행할 수 있는 양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울에 배당된 돈[名下錢]주 1)은 끝내 거둬들이기 어렵습니다.
책값을 3냥으로 배정했던 것은, 지난겨울에 이미 통문으로 알려드렸음에도 아직 찾는 사람이 없으니 한심스럽고 한심스럽습니다.
본래 경주에서 올라왔다면 원보는 마땅히 이를 가지고 내려가야 할 것이니 그때 모든 일을 자세히 의논하겠습니다.
지난날 가져갔던 『취죽유고(醉竹遺稿)』는 반드시 믿을 만한 인편에 서둘러 올려보내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세고(世稿) 가운데 고증하여 베껴 쓸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격식을 갖추지 않고 올립니다.
기유 8월 29일, 족종(族從) 상중(象中) 머리 조아리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