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고종 16) 11월 26일에 신랑 측인 신홍모(申洪模)가 신부 측인 류 생원(柳生員)에게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내면서 쓴 답장이다. 먼저 류 생원이 심부름꾼과 편지를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언급하고, 밤사이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아서 기쁘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전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혼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성첩(星帖, 사주단자)을 써서 보낸다고 하였다.
신홍모(1841~1914)의 아들 신서구(申瑞求, 1864~1936)가 류영시(柳永蒔)의 딸 고흥류씨(高興柳氏, 1860~?)와 결혼하였다. 신홍모는 『고령신씨대동보』에 신규모(申奎模)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자는 사범(士範)이고, 호는 담헌(澹軒)이며, 고흥군 동강면(東江面) 매곡리(梅谷里) 당곡(棠谷) 마을에 살았다. 신서구의 자는 성심(性心)이고, 호는 석남(石南)이다. 신서구와 고흥류씨 사이에는 2남 1녀가 있는데, 아들은 신두휴(申斗休, 1883~1953)와 신정휴(申井休, 1888~1934)이고, 딸은 류중빈(柳重彬)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