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서로 오가지 못하다가 언제나 귀 고을에서 온 친구를 만나는 사이에 형의 안부를 들었을 뿐인데, 생각 밖에 우체부가 한 통의 소포를 건네주어 펼쳐보니 바로 형의 조부 유고(遺稿)였습니다.
두 손으로 받들어 읽어보니 시와 문장은 여느 문자가 아니었으며, 그 가운데 가훈(家訓) 등 편은 세교(世敎)에 도움이 되는 바 많습니다. 이는 세속의 보통 글줄이나 찾고 글자나 세는, 그리고 음풍농월하는 사람들의 문장과는 비교할 바 아니었습니다.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삼가 여러 차례 은하수가 도는 즈음에 고요히 함양하신 형제분의 몸은 한결같이 진중하시고, 제씨 또한 평안하십니까? 먼 곳에서 엎드려 그리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아우는 아래로 식솔을 거느림에 있어 놀랄 일이 없으니 이 밖에 무엇을 번거롭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 해 동안 격조한 나머지, 어찌하여 저를 잊지 않으시고 선조의 문집을 보내주십니까? 감사하는 마음 참으로 깊습니다.
형과 저는 널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라도 서로 만날 기회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든이 넘어선 나이에 가야 할 곳이란 장차 어느 곳입니까? 한심스럽고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나머지는 존귀한 몸, 계절 따라 강건하시고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경신 6월 29일, 경제(庚弟) 위석한(魏錫漢) 삼가 두 번 절하고 답서를 올림
손이 떨려 남의 손을 빌려 씁니다.
고흥군(高興郡) 고흥읍(高興邑) 호산(虎山)
류송은 대석씨(柳松隱大錫氏) 좌하
근봉
장흥군(長興郡) 관산면(冠山面) 당동(堂洞)
위석한(魏錫漢) 근사장(謹謝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