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숙님 전 글을 올립니다.
지난달 그믐, 영주인(營主人)의 집에 서신을 보냈는데, 거의 부침(浮沈)을 면치 못하셨습니까? 덧없는 세월로 초하루인데 그 사이 정황을 생각하면 굳이 말할 수 없을 것임에도 당질은 아직껏 마냥 집에 머물면서 끝내 찾아가 위로조차 못 했습니다. 그 죄송함을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 저 송현(松峴)에 올라 북녘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덮인 산자락은 거듭거듭 막혀있는데, 진잠 땅은 그 어느 곳에 있는지? 저 류광재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니 어찌 절통하고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엎드려 탄식할 뿐입니다.
혹독한 무더위에 객지에서의 몸은 어떻게 감당하고 계십니까? 지극히 부끄러운 마음에 엎드려 사모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당질은 예전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이는 다행한 일이지만, 농사는 전혀 짓지 못했습니다. 이달 초나흘에 호미질할 만큼의 적은 비가 내렸고 여드렛날의 비는 바로 복일(伏日)로 겨우겨우 모내기했으나 앞으로 살아갈 일이 아주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백모시 값은 쌀 열 말이고 저잣거리의 값은 두 말 다섯 되라 이 또한 다행입니다.
통오(通吾) 형제와 문출(文出), 우옥(又玉) 모두 신병이 없으며, 가까운 여러 일가는 모두 우환이 없는데, 동촌(東村)의 군길(君吉) 객은 삼대가 모두 죽었고 그중에 정복(正福)의 변사(變死)는 비참하고 애통합니다.
점암(占巖) 숙모 댁의 가장(可葬) 논, 당산(堂山) 논은 이달 초열흘에 늦게 모내기하였고, 그 나머지 논은 일찍 모내기를 끝내 올 농사의 풍년을 점칠 수 있으며, 모두가 한정된 종자이기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으니 다행 중 다행입니다.
그러나 3월 초4일 이후에 내린 비는 소낙비, 그리고 호미질할 만큼의 적은 비가 먼지를 적셔줄 정도였습니다. 끝내 흡족하게 내리지 않아 날마다 가뭄이 이와 같음으로써 올벼도 오히려 모내기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늦은 모내기야 오죽하겠습니까?
목화는 아무리 장래 희망이 있다지만, 콩은 희망이 없으며, 기장과 조는 풍년입니다. 경내 지방의 모내기를 전체로 말하면, 3등분은 못했고 7등분은 모내기했다고 합니다.
이달 초하루에 외국 사람이 표류하여 우리나라 섬에 도착한 까닭에 찾아가 물어보니 유구국의 사람이 5월 일에 황금을 진상하고자 중국을 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우리나라 섬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는 작은 배였고 뱃사공은 세 사람뿐이었으며, 뱃속에 실린 물건은 명송(明松) 3, 4단이며, 그들의 언어는 우리나라와 대동소이하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엎드려 객지에서 기력이 손상하지 않고 계절 따라 안녕하시며, 하루속히 방면되시기를 빕니다. 말씀드릴 바는 끝이 없으나 편지를 마주함에 정신이 혼미하고 할 말을 잊어 격식을 갖추지 않고 이만 줄이면서 엎드려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병술 6월 14일 아침, 당질 서호(瑞浩)는 삼가 두 번 절하고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