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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류서호(柳瑞浩) 간찰(簡札)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내용분류
· 작성주체 발급자 : 류서호(柳瑞浩) / 수취자 : 堂叔(당숙)
· 작성시기 丙戌六月十四日 (1826)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5.0 X 65.0
· 소장처 현소장처 : 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고흥 고흥류씨 충정공(류탁) 후손가
· 참고문헌
  • 정의

    1826년 6월 14일에 당질(堂侄) 류서호(柳瑞浩)가 당숙(堂叔)에게 보낸 간찰(簡札).

    원문텍스트
    [미상]
    당숙님 전 글을 올립니다.
    지난달 그믐, 영주인(營主人)의 집에 서신을 보냈는데, 거의 부침(浮沈)을 면치 못하셨습니까? 덧없는 세월로 초하루인데 그 사이 정황을 생각하면 굳이 말할 수 없을 것임에도 당질은 아직껏 마냥 집에 머물면서 끝내 찾아가 위로조차 못 했습니다. 그 죄송함을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 저 송현(松峴)에 올라 북녘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덮인 산자락은 거듭거듭 막혀있는데, 진잠 땅은 그 어느 곳에 있는지? 저 류광재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니 어찌 절통하고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엎드려 탄식할 뿐입니다.
    혹독한 무더위에 객지에서의 몸은 어떻게 감당하고 계십니까? 지극히 부끄러운 마음에 엎드려 사모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당질은 예전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이는 다행한 일이지만, 농사는 전혀 짓지 못했습니다. 이달 초나흘에 호미질할 만큼의 적은 비가 내렸고 여드렛날의 비는 바로 복일(伏日)로 겨우겨우 모내기했으나 앞으로 살아갈 일이 아주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백모시 값은 쌀 열 말이고 저잣거리의 값은 두 말 다섯 되라 이 또한 다행입니다.
    통오(通吾) 형제와 문출(文出), 우옥(又玉) 모두 신병이 없으며, 가까운 여러 일가는 모두 우환이 없는데, 동촌(東村)의 군길(君吉) 객은 삼대가 모두 죽었고 그중에 정복(正福)의 변사(變死)는 비참하고 애통합니다.
    점암(占巖) 숙모 댁의 가장(可葬) 논, 당산(堂山) 논은 이달 초열흘에 늦게 모내기하였고, 그 나머지 논은 일찍 모내기를 끝내 올 농사의 풍년을 점칠 수 있으며, 모두가 한정된 종자이기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으니 다행 중 다행입니다.
    그러나 3월 초4일 이후에 내린 비는 소낙비, 그리고 호미질할 만큼의 적은 비가 먼지를 적셔줄 정도였습니다. 끝내 흡족하게 내리지 않아 날마다 가뭄이 이와 같음으로써 올벼도 오히려 모내기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늦은 모내기야 오죽하겠습니까?
    목화는 아무리 장래 희망이 있다지만, 콩은 희망이 없으며, 기장과 조는 풍년입니다. 경내 지방의 모내기를 전체로 말하면, 3등분은 못했고 7등분은 모내기했다고 합니다.
    이달 초하루에 외국 사람이 표류하여 우리나라 섬에 도착한 까닭에 찾아가 물어보니 유구국의 사람이 5월 일에 황금을 진상하고자 중국을 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우리나라 섬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는 작은 배였고 뱃사공은 세 사람뿐이었으며, 뱃속에 실린 물건은 명송(明松) 3, 4단이며, 그들의 언어는 우리나라와 대동소이하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엎드려 객지에서 기력이 손상하지 않고 계절 따라 안녕하시며, 하루속히 방면되시기를 빕니다. 말씀드릴 바는 끝이 없으나 편지를 마주함에 정신이 혼미하고 할 말을 잊어 격식을 갖추지 않고 이만 줄이면서 엎드려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병술 6월 14일 아침, 당질 서호(瑞浩)는 삼가 두 번 절하고 글을 올립니다.
    [미상]
    堂叔主前上書
    去月晦書傳于營主人家幾未免浮沈
    否日月裾〖居〗諸乃至是朔其間景色想必
    不言而惟此堂侄尙爾在家終未晉慰其
    爲罪悚豈可容達噫登彼松峴瞻望
    北天雲山重隔鎭岑何處彼其匡梓容
    于此世豈不切痛寒心哉只自伏歎而
    已伏未審酷炎
    旅中氣體候抑何堪恧至切伏慕區區
    無任下誠之地堂侄姑依侍側是以爲
    幸而所農全未矣今初四之鋤雨八日之雨
    乃伏日僅僅移種來頭生活十分深慮處
    也就恐白牟市直十斗米市直二斗五升
    則此亦幸也通吾兄弟與文出又玉皆
    無身病至親各家俱無憂患而東村君吉客
    三代俱沒其中又有正福之變喪慘慟慘慟
    占巖叔母宅可葬畓堂山畓今初十日晩
    種其餘早移利卜所農皆是限種故大
    作幸之幸也然自三月初四日以後所霈
    者驟雨鋤雨浥塵而已終無洽足日旱
    如此早種猶難況晩移者乎綿花雖
    有將來之望而豆太無望黍粟則登豐
    耳洞論境內則三分未七分移云云今初一日
    異國人飄到國島故往問則以琉球國
    人五月日黃金進上次入于中原遇風而
    來云舟則小車舟人則三人而已舟中所載
    之物明松三四介言語與東國大同小異云
    餘只伏冀
    客中氣力無至損傷順序安寧俾速
    圖放所言無窮臨紙昏忘不備伏惟
    下在

    丙戌六月十四日朝堂侄瑞浩謹再
    拜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