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유배길로 멀리 충주로 향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삼가 그 행색과 그 심정을 상상하노라니 저도 모르게 목이 멥니다. 우러러 바라보는 서글픈 감회를 어떻게 잠시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중간에 한 통의 서찰을 보내주시어 문득 책상머리에 전해와 서둘러 펼쳐봄에 아주 기쁜 마음 그지없었는데, 하물며 조금 가까운 곳으로 옮겨 왔다는 소식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혹 반연이 있어 그렇게 되신 것인지? 이곳과 진천(鎭川) 고을과의 노정은 비록 백 리 길이나 이 외진 고을에 일찍이 친숙한 사람이 없어 답장을 전할 인편을 찾을 길이 없음으로써 피차의 소식이 끊겨 들을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생각건대 삼복더위에 객지에서의 몸은 줄곧 평안하시며, 음식과 숙소의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 고을 원님과는 혹시 손을 잡고 돌봐 주는 편의가 있으십니까? 우러러 염려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못난 일가는 실오라기처럼 목숨을 부지하는 꼴이 바로 하나의 산 송장이니 다시 그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관아나 고을에 어찌 머나먼 객지에서 고생하신 분을 부탁하는 심정이 없겠습니까마는 고을엔 친한 사람이 없고 관아 또한 마(魔)가 낀 곳입니다. 바야흐로 이처럼 한탄하던 즈음에 서울 종손(從孫)이 내려와 그 조카가 진천 원님과 평소 친분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신당부해 놓았으니, 반드시 얼렁뚱땅하지 않고 특별히 도모할 것 같습니다.
흥양의 서신은 지난달 완주로부터 전해왔기에 이제 부치려고 합니다. 이 또한 어느 때나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말미를 받을 길이 있다면 가까운 날에 한 차례 왕림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노병의 혼미로써 애써 남의 붓을 빌리기에 이만 줄이면서 때늦은 답글을 드립니다.
병술 6월 초9일, 늙고 병든 일가 유배객, 머리를 조아리며 올립니다.
흥양(興陽) 고산(高山) 월곡(月谷) 종인(宗人) 사서(謝書)
류생원(柳生員) 유배지 회납(回納) 생식(省式) 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