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나도록 찾아뵙지 못하여 항상 그리고 답답한 마음 간절하였는데, 이번 과거 보러 가는 종씨 인편에 대략이나마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듣고서 위로의 마음 그지없습니다. 먼 일가인 저는 부모님 섬기면서 그럭저럭 평안하니 다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경향 각지 분주히 다니느라 온갖 시름이 한 몸에 쏟아지니 이를 어찌해야 할는지?
말씀드리고자 함은, 족보의 완성으로 그 기쁨이야 이루 형언할 수 없지만, 또한 아주 잘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훗날 만나면 자세히 말씀드릴 것이지만, 우리 파의 선조 부학공(副學公)ㆍ진사공(進士公) 양세(兩世) 묘비문은 이를 인쇄하여 족보의 끝 편에 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 집안의 돈으로 뒤이어 서울 인쇄소에서 인쇄하였으나, 부학공 선조 의 현주(懸註)는 또한 사실이 없음으로써 착오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에 관련된 두 판을 뒤이어 다시 인쇄하였습니다. 모두 8장이며 40건을 인쇄하여 장차 족보를 소유한 집안에 전하고자, 귀 고을의 모든 집안에 7권을 받들어 올리오니 반드시 이를 끼워 넣으시고, 현주 2장은 바꿔 바로잡으심이 어떻겠습니까?
이곳 여러 종친의 돈은 장차 소중한 곳으로 넣어둘 것이지만, 모든 집안에서 말하기를, "족보 구매한 값을 잘 거둬낼 수 없다."라고 하니 훗날 남쪽 지방 종친이 올 적에 각 지방에 따라 독려하여 받아오심이 좋을듯합니다. 이밖에 다른 계책이 없습니다. 언제쯤이나 서울을 오시려고 합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는 모두 조만간 만나서 말씀드릴 것입니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이만 줄입니다.
인쇄한 8장은 장차 고창, 나주, 정읍 세 곳으로 전하려고 하나 붙일 만한 인편이 없습니다. 이는 훗날 종씨의 인편을 기다려 보내고자 합니다.
을축 10월 보름, 먼 일가 영도(榮道) 절하고 올림
흥양(興陽) 호산(虎山) 확교(確橋) 먼 일가 후장(候狀)
류생원(柳生員) 달부댁(達夫宅) 전납(傳納) 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