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고종 19)에 읍내면(邑內面) 호산동변리(虎山東邊里)에 사는 유학(幼學) 류영시(柳永蒔)가 흥양현(興陽縣)에 올린 호구단자이다. 호주(戶主) 류영시는 나이가 50세로 계사생(癸巳生)이고,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사조(四祖)는 부친 학생(學生) 류철호(柳徹浩), 조부 학생 류일영(柳日榮), 증조부 학생 류경(柳坰), 외조부 학생 송우신(宋禹臣, 본관 여산(礪山))이다. 가족 구성원으로는 아내 영광정씨(靈光丁氏, 51세, 임진생), 아들 유학 류경준(柳敬浚, 28세, 을묘생), 며느리 송씨(宋氏, 32세, 신해생)가 기록되어 있다. 아내 영광정씨의 사조는 다음과 같다. 부친은 학생 정두형(丁斗亨), 조부는 학생 정식조(丁式祚), 증조부는 학생 정효빈(丁孝彬)이고, 외조부는 학생 송수귀(宋壽龜)로, 본관은 여산이다.
호구단자를 접수할 때 붉은 먹으로 표시를 하였는데, 호주와 구성원 위에 점을 찍었으며, 상단에 '一三'을, 하단 관인 부분에 '准'과 '再'를 적어 놓았다. '일삼'은 1통 3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류철호는 『고흥류씨세보』에 류지호(柳志浩)로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