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순조 즉위년) 10월에 읍내면(邑內面) 호산동변리(虎山東邊里)에 사는 유학(幼學) 류혁영(柳爀榮)이 흥양현(興陽縣)에 올린 신유식(辛酉式, 1801년) 호구단자이다. 류혁영의 나이는 40세로 임오생(壬午生)이고,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류태영의 사조(四祖)가 기록되어 있는데, 부친은 학생(學生) 류경(柳坰), 조부는 학생 류희탄(柳希綻), 증조부는 통덕랑 류성갑(柳星甲)이고, 외조부는 학생 정도명(丁道明)으로 본관이 영광(靈光)이다. 가족 구성원으로는 모친 정씨(丁氏, 65세, 정사생), 아내 관산임씨(冠山任氏, 29세, 계사생), 동생인 유학 류일영(柳日榮, 35세, 정해생)과 제수(弟嫂) 송씨(宋氏, 31세, 신묘생), 과부인 제수 정씨(丁氏, 31세, 신묘생), 동생 류종영(柳宗榮, 사망)이 기록되어 있다. 아내 관산임씨의 사조는 다음과 같다. 부친은 유학 임계일(任桂一), 조부는 학생 임순연(任舜淵), 증조부는 학생 임진조(任鎭朝)이며, 외조부는 학생 김단(金壇)으로 본관이 고성(固城)이다. 그리고 노비는 모두 3구(口)가 적혀 있는데, 비(婢) 옥진(玉眞, 병영(兵營)으로 도망), 옥진의 일소생(一所生) 노(奴) 위손(渭孫, 13세), 비 명대(命代, 24세) 등이다.
호구단자를 접수하면서 붉은 먹으로 표시를 하였는데, 구성원에 점을 찍거나 줄을 그었으며, 호주 위에 '一一'을, 하단에는 '准'과 '再'를 적었다. '일일'은 1통 1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단에 검은색으로 쓴 '書'자는 문서를 베껴 썼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류혁영은 류태영(柳泰榮)이 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