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5월 5일에 오진영(吳震泳)이 작성한 죽와(竹窩) 류영시(柳永蒔)의 묘갈명(墓碣銘)과 짧은 서(序)이다. 오진영은 당시 류중헌(柳重憲)과 학문적 교류를 맺고 있었으며 류중헌이 오진영에게 본인 할아버지의 묘갈명 작성을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묘갈명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오년(1918) 6월 29일에 죽와 류영시가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송견리에서 장을 치른 후 35년이 지나고서야 임오년(1942)년에 손자인 류중헌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류영시의 자(字)는 자여(子汝)이고, 호(號)는 죽와이다. 본관은 고흥이다. 1833년(순조 33)에 태어났으며 1918년에 졸하였다. 묘갈명의 내용에 따르면 성품이 돈후(淳厚)하고, 효가 있어 부모님을 정성스레 섬겼다고 한다. 부인은 정두형(丁斗亨)의 딸인 영광정씨(靈光丁氏)이다. 영광정씨는 1832년(순조 32)에 태어나 1914년 6월 29일에 졸하였다. 자식은 경준(敬浚) 외 2녀를 두었으며, 손자는 중헌(重憲) 등 1남 2녀이며 증손은 기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