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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헌행장(柳重憲行狀)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시문류-행장
· 내용분류 개인-전기-행장
· 작성주체
· 작성시기
· 작성지역
· 형태사항 크기 : 27 X 134.9
· 소장처 현소장처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 원소장처 :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정의

류중헌(柳重憲)의 생애를 기록한 행장(行狀)

해제
류중헌(柳重憲)의 생애를 기록한 행장(行狀)이다. 행장은 사망한 자의 생전의 평생 이력과 행적을 기록한 글을 말한다. 한 가문의 행적을 기록한 글을 가장(家狀)이라고 하여, 흔히 문집에는 행장과 가장이 부록으로 첨부된다.
이 행장에는 표제를 '先父君狀草'라고 쓰고, 류중헌의 世系, 행적, 성품, 가족관계 등을 서술하였다. 행장에 따르면 이름은 중헌(重憲), 자는 사집(士執)이고, 호는 야산(野山)이며, 본관은 고흥이다. 이어서 遠祖인 升茂로부터 淸臣-有奇-濯-濕-漬-澤-汶-忠禮-淳-遇龍-河-東起-星甲-希綻-坰-日榮-志浩-永蒔-敬浚으로 이어지는 가계의 내력을 간략히 기술하였다.
고종 계유(1873) 10월 5일에 태어났으며 품성이 영민하고 의도(儀度)가 청수(淸秀)하여 어렸을 때부터 성인과 다름없이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법도를 알았다고 한다. 커서는 가정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經史와 義理에 밝았다. 竹窩公(류영시)이 항상 애지중지 하며 장자 우리 집안을 빛낼 것이라고 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3년 상을 치렀고, 고조부 滄溟公(류일영)이 痛憤하게 여겨 선조 류청신이 고려사에 피무(被誣)되어 있는 것에 대해 찬술한 신암실기가 오래도록 세상에 간행되지 못한 것을 국내 高名家를 방문하여 많은 辨文을 받아 마침내 간행하였다. 임진년(1952) 9월 9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죽었다. 묘는 虎西 佛岩洞에 있다. 배우자는 南陽 宋冑僖의 딸이고, 정해년(1947) 1월 13일에 죽었으며, 묘는 修德山 아래에 있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大錫이고, 차남의 浣錫이다. 이후 손자와 증손들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 행장은 작성 시기, 작성자에 대한 기록이 없어 누가, 언제 서술한 것인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