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인(1854)년 11월 27일에 慶州后人 李次炯이 큰아들 在成의 신부인 柳生員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이다. 편지는 따님을 큰아들 在成의 아내로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며, 옛 어른들의 예절에 따라 납폐(納幣)의 의례를 행한다는 내용이다. 연결문서로 피봉(皮封) 1점, 涓吉 1점이 있다.
고흥류씨 족보에 柳世榮(1774~1846)의 사위로 李在成이 기록되어 있어 이 문서의 수신인인 신부 柳生員댁은 류세영가로 짐작된다.
이 시기의 혼인은 지역과 가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議婚, 납채, 연길, 納幣, 大禮, 于歸의 6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랑 측에서 중매인을 통해 혼인 의사를 표시하고(의혼) 신부 측에서 혼인을 받아들인다는 의식인 납채를 치른다. 납채를 할 때 신랑 측에서 예물과 함께 사주단자를 신부 측에 전해주고, 신부 측에서는 신부의 궁합과 비교하여 혼인날을 택해 신랑 측에 연길을 보낸다. 날짜까지 확정이 되면 신랑 측은 각종 예물을 함에 담아 신부 측에 보내는데 이를 납폐라 한다. 혼인날이 되어 신랑은 목욕재계를 하고 조상 사당에 배례를 하고 신부집으로 떠나 신부와 처음 만나고 대례인 교배례와 합근례가 이어진다. 대례가 끝나면 신랑은 신부의 친척과 인사를 하고 첫날밤을 치른 후 신부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이것을 우귀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