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2월에 동감강목발간유회소(東鑑綱目發刊儒會所)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동감강목발간소의 유사(有司)로 천거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동감강목은 송병선(宋秉璿)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사로 편찬한 책이다. 1902년에 완성된 필사본을 1970년 남원향교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27권 5책이다. 주희의 강목체(綱目體)를 편찬의 기준으로 삼아 우리 역사를 정리하였다. 우리 역사의 시원을 단군(檀君)으로 잡고 있으나 문헌의 입증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삼국통일을 이룬 669년(문무왕 9)에서 1863(철종 14)까지 1,195년간의 기사를 편년(編年)에 따라 수록하고 있다. 범례에서 밝힌 편찬의 원칙은 연대의 표시는 우리 왕호를 기준으로 중국왕조의 연대를 위에 붙이고 외민족의 왕조(五代·遼·金·元)의 경우는 우리 연대의 아래에 붙여 차별화하였다. 조선을 침략했던 청(淸)의 연대는 붙이지 않은 사실에서 화이론(華夷論)적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동감강목』의 편찬은 한말 도학자의 역사 인식과 사관을 밝힌 모범이 되고 있으며, 송병선의 문하에서는 이 책의 편찬 원칙을 이어 우리 역사의 편찬을 보완해갔다. 1912년 김종가(金鍾嘉)는 고종 원년(1864)에서 경술국치(1910)에 이르는 47년간의 역사로 『속동감강목』(1972) 6권 1책을 편찬하고, 1931년 김재홍(金在洪)은 단군에서 통일신라 직전인 문무왕 무진(668)까지를 수록한 『동감강목전편(東鑑綱目前編)』 8권 1책을 편찬하였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유사는 유사 중 그 우두머리를 '도유사(都有司)'라 하고 경리를 맡은 유사를 '사화유사(司貨有司)', 연락을 맡은 유사를 '전명유사(傳命有司)', 문서작성을 맡은 유사를 '사서유사(司書有司)'라고 불렀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유사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장례·출간·건물 중수 등 단기간에 처리를 요하는 일시적인 유사는 그 예정된 일이 완료될 때까지 회의의 결정사항을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