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고종 8) 12월에 本縣 邑內面 虎山 사는 儒生 柳永德, 柳新錫, 柳師浩가 興陽縣 呂島 掌松官에게 제각 보수에 필요한 材木의 사용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올린 所志이다. 이 소지를 올린 이유는 자신들의 17대조인 柳淸臣의 묘가 본 현에 있다고 하면서 이곳의 祭閣이 무너져 이를 改建하고자 하는데 들어가는 材木은 묘소에 이미 자란 소나무와 잡목이 알맞으니 掌松官에게 재목으로 쓸 수 있도록 立旨를 成給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따라 15일에 장송관은 松禁의 法意가 비단 松山을 봉한 것이나 묘소이고 이미 자란 소나무와 잡목을 작벌하여 개건한다고 하니 자손의 遠誠 매우 가상함을 들었으며 더욱이 재상의 묘각이 지금 이미 세워진 것이니 특별히 작벌을 허락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연결문서로 蛇渡僉節制使(1871), 興陽縣監(1871), 水相國(1872)에게 올린 소지 3점이 있다.
소지(所志)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 발괄〔白活〕이라고도 한다. 소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므로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소지는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해, 현존하는 고문서 가운데 토지문기(土地文記)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관원은 소지의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뎨김은 소지의 왼쪽 아래 여백에 쓰며, 그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계속해서 쓰기도 하고 별지를 붙여 쓰기도 하였다. 뎨김을 적은 소지는 그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그 판결에 대한 증거자료로서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