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종은 골짜기에 버려진 늙은 자벌레 같습니다. 나라가 혼란한 이후 각 처 제종(諸宗)의 안부를 들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침울하고 답답하였습니다. 뜻밖에 대동보(大同譜) 통문과 아울러 지난달 21일에 보낸 편지를 이달 2일에 받았습니다. 편지를 열어서 두세 번 읽어보았는데, 종친의 소식인 줄도 몰랐습니다. 요즈음 봄추위가 겨울 추위보다 매섭습니다. 삼가 종인들이 부모를 모시며 지내는 객지 생활이 부디 거대한 사업에 혼자 고생하는 문제는 없겠지요? 몹시 우려됩니다.
저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 병세는 나이와 함께 더 심해져 죽음을 앞두고 있어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오직 다행스러운 것은 슬하의 자식들은 병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저희 가문의 명단(名單)을 의리상 급히 작성하여 올려야 하지만, 우리 종친이 광순(光順)과 보화(寶和) 사이에서 제 살 곳을 얻어서 별과 구슬처럼 흩어졌습니다. 늙은 사람은 병을 앓고 숨었고 젊은 사람은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급하고 일은 늦어지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멀리서 생각해 보건대, 보소(譜所)에서 정단(正單)주 1)하는 일을 앞으로 어찌하겠습니까.
원향(院享)은 봄 3월·가을 9월의 망일(望日)이 아닙니까? 우리 집안의 정단(呈單)은 춘향(春享) 때에 있을 듯합니다. 이것으로 살펴주십시오. 우선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바라건대 병이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찾아뵙고 위로할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겠지만, 노년의 인사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손이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워 이 정도로만 씁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답장합니다.
1954년 2월 4일에 족종 신재희가 절하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