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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7년 10월 22일 첩정(牒呈)(丁丑十月二十二日 牒呈)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030
1637년 10월 22일 첩정(牒呈)
030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병조에 보낸 첩정(牒呈)
: 교동부(喬桐府)의 육군(陸軍) 48호(戶)를 수군(水軍)이 복구될 때까지만 상번(上番)을 면제하고 선박의 제작을 도와주게 하라고 비변사가 통지하였으므로 병조에서도 처리해줄 것.

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22일
명령을 받는 일 때문에 보냅니다.
"이번에 도착한 비변사의 관문(關文)에 이르기를, '……'라는 관문이었습니다.주 67) 본영(本營)의 수군은 사로잡혀가거나 살해된 숫자가 185명이나 될 뿐만 아니라 소속되어 있는 각 고을에서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를 받아 비변사로 올려보낸 뒤에,
'묘당(廟堂)이 복계(覆啓)한 문서에 따라 9월부터 입번(入番)시키라.'
라고 여러 고을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상번할 차례인 수군을 올려보낸 명단을 정리한 책자에 '생존한 수군이 없음'이나 '일족(一族)이 도망함'이라고 현탈(懸頉)한 사람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본영의 전선(戰船) 3척, 방패선(防牌船) 1척, 병선(兵船) 5척, 사후선(伺候船) 8척 총 15척의 선박 위에 설치한 물품들은 지난 해 10월 이전부터 준비해온 물품으로 난리를 겪는 동안 모두 파손되었는데, 전선 2척과 사후선 3척은 일부는 나무를 덧대 개조하였으며, 이러한 연유를 벌써 급히 보고하였습니다.주 68) 그중 수많은 칡줄과 초둔(草芚)을 준비하는 일은 너무나 방대하므로 모쪼록 겨울 이전에 각 선박마다 1건씩이라도 준비해야만 겨울을 넘기고 비와 눈을 피하여 부패되거나 파손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9월부터 시작하여 전례대로 입방(入防)하라고 묘당이 재가를 받아 분부하였으나, 난리를 겪고 난 뒤로 그나마 남아있는 쇠잔한 백성은 그날 하루를 넘기는 일만도 다급하여, 스스로 입번하거나 포(布)를 거두어 다른 사람으로 대신 입번시키는 과정에서 사람들마다 사정이 있다고 하면서 일제히 입방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로잡혀가거나 살해된 숫자가 이와 같이 많으니 본영 수군의 정원이 허술하다는 것을 이에 의거하여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달리 애써 마련하여 잘 처리할 방도가 없었으므로,
'교동(喬桐)의 상번(上番)하는 육군(陸軍) 48호(戶)를 수군이 복구될 때까지만 상번을 면제해주고 본영의 입방에 보태어 전선의 수많은 집물(楫物)을 수리하게 해주소서.'주 69)
라는 내용으로 외람되게 급히 주상께 보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묘당이 재가를 받기 위해 들여보내 주상의 결정을 받은 문서 안의 내용이 이와 같으니, 본조(本曹)에서 본영의 상황을 각별히 헤아려서 속히 명령을 내려 처리하게 해주소서."

▶ 어휘 해설 ◀
❶ 현탈(懸頉) : 입시(入侍), 좌기(坐起), 입직(入直) 등의 행사나 모임에 참석해야 할 관원이 참석할 수 없을 경우에 참석 대상자 명부의 당사자 이름 아래에 불참 사유를 '병(病)'이나 '말미를 받음[受由]' 등으로 기록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석 67)
'025 비변사의 관문' 참조.
주석 68)
'0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주석 69)
'021 나덕헌의 장계' 참조.
丁丑十月二十二日 牒呈
爲行下事.
"節到付備邊司關內云云關是乎等用良. 本營水軍被擄、被殺之數, 至於一百八十五名叱分不喩, 所屬各官良中, 存沒成冊收捧, 備邊司以上送之後, '自九月, 依廟堂覆啓公事入番.'亦, 行移列邑爲乎矣. 以'存者無.' '一族逃亡.'是如, 番次起送成冊良中懸頉者, 比比有之爲去等. 本營戰船三隻、防牌船一隻、兵船五隻、伺候船八隻幷十五隻船上什物, 自去年十月以前措備之物, 亂離中盡爲破落爲有去乙, 戰船二隻、伺候船三隻, 除除良添木改造, 緣由段, 已爲馳啓爲有乎矣. 其中許多葛注乙、草芚措備功役, 極其酷大, 須及冬前, 各船良中, 每一件是乃措備爲良沙, 庶可經冬避雨雪, 不至於腐破. 而九月爲始, 依前立防, 雖有廟堂啓下分付, 而經亂之後, 孑遣殘民, 唯朝夕始急爲去等, 或自立或收布代立之際, 物物稱頉, 一齊入防不冬叱分不喩, 擄殺之數, 如此之多, 本營軍額之虛疎乙, 據此可想是乎等以. 百般思惟, 他無拮据善處之道, '喬桐上番陸軍四十八戶乙, 限水軍蘇復間, 除上番本營添防, 使之修緝戰般許多楫物.'辭緣, 冒濫馳啓爲有如乎. 廟堂入啓定奪公事內辭緣如此是去乎, 本曹以各別商量本營事勢, 速令行下處置爲只爲."